작년 11월 상암에서 OFFSIDE GIRLS 배너를 처음 걸었다. 그로부터 1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 파랑검정은 상암에서 #BLUEGIRL 배너를 걸었다. 내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안전하게 축구장에 입장해서 응원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죽지 않았다. 내가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선을 넘는 여자들을 응원한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억장이 무너진다. 피부색도 국적도 사용하는 언어도 응원하는 팀도 다르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나의 자매들이 더이상 희생되거나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자..
10년만에 수원 원정에서 이겼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무했다. 분명한 건 그들은 10년이나 못 이길 정도의 상대가 아니었다. 장안의 화제였던 ‘김**의 트리콜로’ 사건이 보여주듯 수원삼성의 응원 문화는 위계 질서와 군대식 문화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소수의 꼰대가 스스로 획득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나치의 거수 경례까지 따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원삼성의 골대 뒤는 사유없는 응원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사유하는 응원이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지 않고 누구나 동등한 권리로 즐길 수 있는 응원 문화를 말한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다양하게 발언할 수 있는 응원 문화를 말한다. 행여나 골대 뒤에서 옳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도 자정할 수 있는 건..
심판을 돈으로 사는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수준 낮은 행동을 했을 때 (물론 그들의 수준에 맞는 행동이지만) 가령 형광색 굿즈를 착용하고 원정 구역이 아닌 좌석에 버젓이 앉는다든지, 경기 종료 후 보란듯이 원정팀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다든지 했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멍때리고 있는 인천 프런트 때문에 화가 난다. 냉장고 깊숙이 처박아 둔 음식물 쓰레기처럼 잘 보이지 않을수록 썩어 있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매년 반복되는 강등 위기의 핵심 이유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썩어 있는 고인물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가 문제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당신이 바로 고인물이다. 고인물에서 악취가 풍긴다. 제발 생각이란 걸 좀 하고 변화하자. 정..
응원석에서의 불편함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두가지로는 부족하다. 옆사람이 흔드는 깃발에 얼굴을 맞기도 하고 뒷사람이 흔드는 팔에 얻어 맞기도 한다. 득점 후 누군가가 신이 나서 뿌리는 물을 맞기도 하고 날카로운 부잉 소리에 귀가 아프기도 하다. 이 모든 일들은 응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로 절대 고의나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만약 이 모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겠다면 응원석이 아닌 다른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면 된다. 응원석은 쾌적한 경기 관람보다 응원이 우선하는 공간이다. 파랑검정 현장팀은 인천유나이티드 골대 뒤 즐거운 응원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단으로부터 직간접적 지원을 받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정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체 원정버..
이기고 난 후 팬들의 반응은 단순하다. 열광하고 환호한다. 하지만 지고 난 후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야유를 보낸다. 박수 치는 사람이 야유 하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금요일 경기는 주말 이틀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나는 주말에 출근했지만) 여담이지만 일터에서 타팀 경기를 중계로 보다가 상의 탈의한 관중들을 발견했다. 물론 모두 남성들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잘 모르겠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음대로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건 권력이다. (반대로 한 여성 연예인은 브라를 하지 않아서 욕을 먹는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대구 원정은 파도(PADO)의 구성원들과 함께 KTX를 이용했다. 인천 사람들은 고속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서 광명이나 서울로 이동해야 한다. 인구 300만이 넘는 도시에 아직까지 KTX 정차역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인천에 산다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동대구역에서 DGB대구은행파크로 이동하는 동안 대구 시내에서 운행 중인 518 버스를 보았다. (광주에서는 228 버스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대구 시내에 다소 투박하게 지어진 명성이 자자한 새 경기장의 원정석은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경기장 내부 매점에서는 오직 맥주만 판매해서 미성년자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마실 것을 구입할 수 없었고,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다. 화장실은 경기장 외부에 ..
이러면 안되는데 대충 살고 싶어졌다. 4부리그 팀한테 지는 1부리그 인천유나이티드처럼, 지고 있는데 이기고 있는 것처럼 뛰는 인천유나이티드처럼 말이다. 패색이 짙다 못해 우리를 온통 에워 싸고 있는 기분이다. 파도(PADO)의 구성원들은 직업 특성상(?) 일주일에 7일 정도 만나는데 요즘엔 모여서 한숨만 쉰다. 잠시라도 대화가 끊기면 어김없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제 술자리에서는 그래도 선덜랜드보다는 낫지 않냐며, 우리보다 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 자기위안에 몰두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넷플릭스 를 시청하기를 바란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의 첫 문장이다. 5연패가 확정되는 순간 왜 이 문장이 떠올랐을까.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따르면 잘 나가는 팀은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뭘해도 안 되는 팀은 수만가지 이유로 불행하다. 누군가는 10번을 비난하고 누군가는 19번을 비난한다. 어떤 이는 29번을 패인으로 꼽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14번을 패인으로 꼽을 것이다. 이 모든 의견을 종합하면 그냥 11명 전부 못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고로 인천유나이티드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감독 경질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감독은 여러 패인 중 하나일 뿐이고 아직 우리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더 많다. 4월이 이제 겨우 절반 지났건만 응원석은 벌써 텅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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