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클럽과 팬의 관계는 흔히 부모와 자식 관계로 비유되곤 한다. 가령 연고 이전 클럽을 비판할 때, 부모를 저버린 자식이라는 의미로 패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클럽 유소년 출신 선수를 대하는 팬의 자세는 우리집 귀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매우 흡사하다. 해당 선수가 경기 중 깊은 태클이라도 당했다치면 우리집 귀한 자식을 건드린 댓가로 골대 뒤에선 어마어마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진다. 유소년 출신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뿌듯함이 배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타까움이 배가 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아직 15년차 클럽인 우리는 아픈 손가락을 대하는 방식도 차근차근 배워 나가는 중이다. 창단 15년. 그러고 보니 축구장에 유난히 가족 단위의 팬들이 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3년 전 오늘 FA컵 8강전 제주 원정에서 승리했다고, 구글 포토가 알려 줬다. 덕분에 내색은 안했지만 하루종일 느낌이 좋았다. 이 느낌이란게 정말 중요하다. 축구를 오래 보다 보니 온갖 비이성영역에 의존하게 된다. 17경기 동안 승리가 없었고 설레발은 필패이기 때문에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부정탈까봐 말을 아꼈다. 전반은 스탠딩석에서 후반은 S석 맨 앞줄로 이동해서 응원했는데 손잡이가 없는 넓은 공간이라 응원하기 훨씬 자유로웠다. 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만큼 벌레 조롱과 골 셀러브레이션 아이컨택은 덤이다. 화살로 패륜 때려 잡는 남준재의 동점골, 월드컵 스타 문선민의 역전골까지. 사실 마지막 5분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께 기도했고, 경기가 끝나자 한 친구는 문선민을 축구의 신..
늘 설명해야했다. 어떤 계기로 축구장에 다니게 되었는지, 유나이티드를 응원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축구장에 나올 것인지에 대하여. 또래 남자애들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착잡했다. 남들처럼 나도 그냥 축구가 재밌고 응원하는 일이 즐거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할 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지곤 했다. 골대 뒤에서 나란 존재가 일시적이고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선례를 마련하자, 더이상 질문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장들은 나에게 주어진 일종의 의무처럼 여겨졌다. 입으로는 할 수 있어, 인천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할 수 있어, 여자를 되뇌었달까. 언젠가 친구들에게 속내를 털어 놓은 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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