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축구장은 일탈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이다. 일상 속에서 말하지 않는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 의견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발언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나는 축구장을 일종의 광장이라 여기고 축구장의 언어로 발언하고자 한다. 플래그를 제작했다. 오프사이드 기(旗) 패턴을 배경으로 OFFSIDE GIRLS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동명의 영화 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영화 는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보기 위해 남장을 하고 아자디 경기장에 몰래 입장을 시도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오프사이드란 금지된 선을 넘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런데 오프사이드 반칙을 저지르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란의 여성들인가? 아니면 이란이라는 국가 권력인가? 여성을 억압하고 ..
인천유나이티드가 비상이 걸릴 때마다 긴급 소집하는 특별 원정대가 바로 ‘비상 원정대’라고, 우리끼리 주고받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2005년 리그 준우승의 상징인 비상(飛上)보다 강등 위기의 비상(emergency)이 먼저 떠오르는 현실이라니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이번 비상 원정대는 시간(토요일 오후 2시), 비용(구단에서 제공한 무료 버스), 거리(비교적 가까운 춘천)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 버스 8대 규모의 원정단이 꾸려졌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이정도의 인원이 함께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과 비용과 거리에 상관없이 인천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무런 의미..
골대 뒤에서는 많은 것들이 암묵적인 약속으로 정해져 있는데 특히 응원 구역에 관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인천유나이티드 골대 뒤는 주로 소모임별로 응원 구역이 정해져 있다. (다른 클럽의 골대 뒤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소모임의 자리를 침범하거나 원래의 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드물게도 나와 함께 하는 파도(PADO:NEW WAVE)라는 그룹은 응원 구역을 때때로 달리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응원 구역에 있어서 파도는 구성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파도의 구성원 K는 E석에서 아기와 함께 관람하는가 하면, L은 S석 난간에 매달려 강도 높은 응원에 임한다. 어디에 있건 어떤 모습을 했건 우리는 파도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다. 파도의 구성원들이 ..
아무래도 매경기 리뷰를 남기는 방식은 영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게으른 내 성격 탓이기도 하고 지지부진한 유나이티드의 성적 탓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 기록하는 건 기억하는 것과 다름 아닌데 그저 잊고 싶어진다. 그래서 규칙적인 기록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써보려고 한다. 먼 미래를 가정할 때 ‘인천이 우승하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인천이 우승하면 타투를 하겠다’라는 식이다. 이말은 타투를 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 우리에게 우승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니까. 오늘 전주에서 여섯 개의 트로피를 보았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밀려 오는 서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
이번에 대구로 내려가는 원정 버스에서 읽은 책은 이었는데 핵폐기물보다 못한 경기력을 목격하고 왔다. 이맘때면 주변에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올해는 정말 강등인가보다- 매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김성호 주심은 그렇게 훈장질이 하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심판직을 관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길 바란다. 그게 K리그 발전을 위한 길이다. 선수들을 코앞에다 불러 세워 심판으로서 권위가 선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심판으로서 공정한 시각을 보여준다면 신뢰와 존경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본인이 어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부터 제대로된 판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경기 내용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서포터의 도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팀을..
다섯 번만 이기면 우승컵을 손에 쥔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 오늘은 보다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FA컵 16강 상대로 만난 목포시청의 소규모 원정단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놀라는 사람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곰곰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봤던 것 같다. 우리도 그들처럼 휑한 원정석에 혈혈단신 서있었던 적이 많다. 골대 뒤에서 응원은 보여주는 것(showing)이기 때문에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말그대로 다다익선이다. 하지만 쪽수를 결정 짓는 가장 큰 요인은 팀의 성적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인천유나이티드는 늘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팀이라 응원단의 규모가 크지 않다. 15년 동안 규모가 늘었다고도 줄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람들이 ..
전날 새벽까지 과음을 하고 오전에 출근하느라 축구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술이 깼다. 축구장엔 나말고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킥오프 시간이 미뤄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경기 시간이 미뤄졌다고? 만나서 술이나 먹자!) 아무리 더워도 목에 스카프를 두르지 않으면 어색하고, 한 손에는 플래그를 들고 응원하는 것을 좋아한다. 캐쥬얼을 표방하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꽤 보수적인 사람이다. 새로 만든 스카프는 독일에서 배송 표류 중이라 하고, 오늘 응원을 하다가 영감이 떠올라 서둘러 새로운 플래그도 제작하려고 한다. 단언컨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고 멋진 바이브를 가지고 있다. 이번 경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응원가 가사에도 나오지만 세상은 거칠다 하지만 최고의 석양과 낭만과 꿈이..
내가 원정 버스에서 보낸 시간을 전부 합하면 얼마나 될까? 실제로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일테다. 예전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엔 이동 시간을 허비하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도록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리디북스에서 전자책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원정갈 때 이용하기엔 최고다. 배터리 만땅 충전한 아이패드만 챙기면 여러 권의 책을 선택해서 볼 수 있고, 터널을 지날 때나 어두운 밤에도 문제 없이 독서가 가능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유시민의 인데 그중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포함한 국민의례’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매우 동의하는 바이고 이번 원정과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기에 다소 길지만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 헌법이 국민 각자에게 준 것은 교육, 근로, 납세, 국방의 의무뿐이..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