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5화 - 사전 점검 2022년 3월 5일 토요일. 리그 4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자, 아파트 사전 점검이 있는 날이었다. 동거인과 내가 앞으로 살게 될 아파트의 이름은 ‘스타디움센트럴시티’로 정해졌다. “스타디움보다는 아레나가 더 좋을 텐데.” 동거인이 말했다. 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근데 왜 죄다 영어야? 축구장 옆 아파트. 직관적이잖아.” 이미 정해진 아파트 이름은 바꿀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사전 점검 3일 동안 찾을 수 있는 하자들뿐이다. 홈 경기가 겹쳐서 시간도 부족하고 직접 하기엔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사전 점검 전문 업체를 불렀다. 토요일 약속된 시간에 총 4명의 전문가가 나타났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일사불란..
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4화 - 그렇다면 계약하겠습니다 조합원 아파트는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서 세대주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자의든 타의든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부적격 세대는 계약금을 비롯해서 기존에 납부한 중도금을 잃기 전에 타인에게 매도하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줍줍’이라고도 한다. 이천수 실장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적격 세대 급매물이 나왔어요. 계약할 의향 있으세요?" 동거인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몇 층이죠?" “30층 이상입니다. 잔디가 보일 거예요. 저 멀리 바다까지 조망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계약이 성사되었다. 우리는 바로 다음 날 모델하우스에 가서 가계약을 건너뛰고 곧바로 정식 ..
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3화 - 계약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반나절 만에 아파트 분양 계약서에 서명한 동거인의 표정이 얼떨떨했다. 국산차를 사러 갔다가 외제차를 사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전셋집을 구하러 갔다가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런 즉흥적인 결정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걸까...”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보자.” 근처 식당에서 우리는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다. 뇌에 영양분이 공급되기 시작하자 의심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집에서 축구장이 안 보이잖아...”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는 8층이었다. 남서향의 창이 축구장을 향해 있긴 하지만 층수가 낮아서 시야에 축구장 ..
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2화 - 오신 김에 가계약을 하고 가세요 동거인은 예전부터 축구장 옆 아파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귀담아 듣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합원 아파트는 원수에게나 권하는 거라는 여론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될지, 공사는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런데 준공식이라면...” 동거인이 얼굴에 희망찬 기색이 감돌았다. “큰 문제가 없으면 무사히 완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네.” 그래도 모델하우스라니. 집을 사는 건 우리 계획에 전혀 없었다. 전셋집을 구해보고 안 되면 월세라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라니.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도 아니고 이제 막 삽을 떴다는데...
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1화 - 이 동네 이사 오지 마요 2018년 여름, 개인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안정적인 거처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옮겨야 하는 상황, 착잡한 마음으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래 살던 동네와는 꽤 멀지만 가장 먼저 축구장 근처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시즌 중에는 자주 가는 홈 경기장이니까, 단순히 근처에 살면 편하겠다 싶었다. 경기가 없는 주말에 부동산에 갔더니 매물을 몇 개 보여줬다.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화장실이 너무 작거나, 인테리어가 해괴망측하거나, 누가 오든지 말든지 웃통을 까고 드러누운 집주인이 있는 집들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이 하나 더 있었다. 가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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