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2화 - 오신 김에 가계약을 하고 가세요

 

동거인은 예전부터 축구장 옆 아파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귀담아 듣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합원 아파트는 원수에게나 권하는 거라는 여론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될지, 공사는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그런데 준공식이라면...”

동거인이 얼굴에 희망찬 기색이 감돌았다.

“큰 문제가 없으면 무사히 완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네.”

그래도 모델하우스라니. 집을 사는 건 우리 계획에 전혀 없었다. 전셋집을 구해보고 안 되면 월세라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라니.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도 아니고 이제 막 삽을 떴다는데. 그렇지만 구경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모델하우스도 근처에 있다고 하니 이왕 외출한 김에 한 번 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모델하우스는 말 그대로 견본 주택이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의 실제 크기와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모델하우스에 도착한 우리는 25평, 30평, 34평을 차례로 구경했다.

“34평은 너무 넓다.”

“그러게. 우리 둘이 살기엔 너무 넓네.”

우리는 25평이 괜찮겠다고 얘기하며 (안 산다며...) 2층 상담실로 올라갔다. 이천수를 닮은 상담 실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실장님께 말할 수 없는 내적 친근감을 느끼며 상담을 시작했다.

“남아 있는 세대는 34평밖에 없어요.”

“34평만 계약이 가능하다고요?”

“네. 그것도 10세대도 안 남아 있어요.”

이천수 실장님은 남은 매물도 빠르게 나갈 거라며 생각이 있으면 서둘러 계약하라고 조언했다. 실거주 목적이든 투자 목적이든 둘 다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왜 그렇죠?”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도 싸고 입지도 좋잖아요. 1호선 전철역이 바로 앞이고, 단지 내 대형 마트가 있는 아파트 보셨어요?”

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치만... 저흰 그냥 인천유나이티드 팬이기도 하고... 그래서 알아보는 건데요...”

이천수 실장님은 이런 애들은 또 처음 본다는 표정을 순간적으로 지어 보였지만 프로답게 친절한 응대를 이어갔다.

“오신 김에 가계약을 하고 가세요. 나중에 취소해도 계약금은 돌려 드려요.”

동거인의 귀가 솔깃하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나도 솔깃했으니까. 그러면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잖아? 일단 가계약을 하고 아니다 싶으면 나중에 취소하면 되지. 그렇게 동거인은 이천수 실장님이 알려준 계좌로 가계약금 100만 원을 입금하고 ‘계약 취소 시 가계약금 환불 가능’이라는 문구가 명시된 계약서에 서명했다. 펜을 쥔 동거인의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 이어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