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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4화 - 그렇다면 계약하겠습니다

 

조합원 아파트는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서 세대주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자의든 타의든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부적격 세대는 계약금을 비롯해서 기존에 납부한 중도금을 잃기 전에 타인에게 매도하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줍줍’이라고도 한다.

 

이천수 실장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적격 세대 급매물이 나왔어요. 계약할 의향 있으세요?"

동거인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몇 층이죠?"

“30층 이상입니다. 잔디가 보일 거예요. 저 멀리 바다까지 조망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계약이 성사되었다. 우리는 바로 다음 날 모델하우스에 가서 가계약을 건너뛰고 곧바로 정식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우리의 결정은 논리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에 분양가보다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집에 우리가 살지 못하면 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한편 인천유나이티드는 생존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성적을 유지하며 2018 ~ 2021 시즌을 보냈다. 3년 반 동안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킥오프 시간보다 조금 일찍 경기장에 가서 주변을 산책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천유나이티드가 이길 때나 질 때나 공사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허허벌판의 공터에 순식간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외벽 페인트와 조경 공사까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2022년이 왔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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