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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옆 아파트를 샀다
3화 - 계약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반나절 만에 아파트 분양 계약서에 서명한 동거인의 표정이 얼떨떨했다. 국산차를 사러 갔다가 외제차를 사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전셋집을 구하러 갔다가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런 즉흥적인 결정을 내린 장본인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걸까...”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보자.”

근처 식당에서 우리는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다. 뇌에 영양분이 공급되기 시작하자 의심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집에서 축구장이 안 보이잖아...”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는 8층이었다. 남서향의 창이 축구장을 향해 있긴 하지만 층수가 낮아서 시야에 축구장 지붕이 딱 걸렸다. 물론 경기 당일에는 응원석에서 축구를 볼 테지만 그래도 창문으로 푸른 잔디를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high risk, high return.' 널리 알려진 투자 격언처럼 조합원 아파트의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은 전망 좋은 호실을 이미 선점한 뒤였고, 안전한 길을 선택한 우리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하루를 꼬박 고민한 끝에 결국 동거인은 이천수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계약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천수 실장님은 흔쾌히 가계약금 100만원을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실장님의 빠른 업무 처리 속도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취소하면 니들만 손해지.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

그렇게 축구장 옆 아파트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는가 싶었다. 며칠 뒤 동거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이천수 실장님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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