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매경기 리뷰를 남기는 방식은 영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게으른 내 성격 탓이기도 하고 지지부진한 유나이티드의 성적 탓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 기록하는 건 기억하는 것과 다름 아닌데 그저 잊고 싶어진다. 그래서 규칙적인 기록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써보려고 한다. 먼 미래를 가정할 때 ‘인천이 우승하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인천이 우승하면 타투를 하겠다’라는 식이다. 이말은 타투를 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 우리에게 우승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니까. 오늘 전주에서 여섯 개의 트로피를 보았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밀려 오는 서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
이번에 대구로 내려가는 원정 버스에서 읽은 책은 이었는데 핵폐기물보다 못한 경기력을 목격하고 왔다. 이맘때면 주변에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올해는 정말 강등인가보다- 매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김성호 주심은 그렇게 훈장질이 하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심판직을 관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길 바란다. 그게 K리그 발전을 위한 길이다. 선수들을 코앞에다 불러 세워 심판으로서 권위가 선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심판으로서 공정한 시각을 보여준다면 신뢰와 존경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본인이 어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부터 제대로된 판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경기 내용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 서포터의 도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팀을..
다섯 번만 이기면 우승컵을 손에 쥔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 오늘은 보다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FA컵 16강 상대로 만난 목포시청의 소규모 원정단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놀라는 사람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곰곰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봤던 것 같다. 우리도 그들처럼 휑한 원정석에 혈혈단신 서있었던 적이 많다. 골대 뒤에서 응원은 보여주는 것(showing)이기 때문에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말그대로 다다익선이다. 하지만 쪽수를 결정 짓는 가장 큰 요인은 팀의 성적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인천유나이티드는 늘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팀이라 응원단의 규모가 크지 않다. 15년 동안 규모가 늘었다고도 줄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람들이 ..
전날 새벽까지 과음을 하고 오전에 출근하느라 축구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술이 깼다. 축구장엔 나말고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킥오프 시간이 미뤄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경기 시간이 미뤄졌다고? 만나서 술이나 먹자!) 아무리 더워도 목에 스카프를 두르지 않으면 어색하고, 한 손에는 플래그를 들고 응원하는 것을 좋아한다. 캐쥬얼을 표방하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꽤 보수적인 사람이다. 새로 만든 스카프는 독일에서 배송 표류 중이라 하고, 오늘 응원을 하다가 영감이 떠올라 서둘러 새로운 플래그도 제작하려고 한다. 단언컨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고 멋진 바이브를 가지고 있다. 이번 경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응원가 가사에도 나오지만 세상은 거칠다 하지만 최고의 석양과 낭만과 꿈이..
내가 원정 버스에서 보낸 시간을 전부 합하면 얼마나 될까? 실제로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일테다. 예전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엔 이동 시간을 허비하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도록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리디북스에서 전자책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원정갈 때 이용하기엔 최고다. 배터리 만땅 충전한 아이패드만 챙기면 여러 권의 책을 선택해서 볼 수 있고, 터널을 지날 때나 어두운 밤에도 문제 없이 독서가 가능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유시민의 인데 그중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포함한 국민의례’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매우 동의하는 바이고 이번 원정과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기에 다소 길지만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 헌법이 국민 각자에게 준 것은 교육, 근로, 납세, 국방의 의무뿐이..
축구 클럽과 팬의 관계는 흔히 부모와 자식 관계로 비유되곤 한다. 가령 연고 이전 클럽을 비판할 때, 부모를 저버린 자식이라는 의미로 패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클럽 유소년 출신 선수를 대하는 팬의 자세는 우리집 귀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매우 흡사하다. 해당 선수가 경기 중 깊은 태클이라도 당했다치면 우리집 귀한 자식을 건드린 댓가로 골대 뒤에선 어마어마한 비난(과 욕설)이 쏟아진다. 유소년 출신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뿌듯함이 배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타까움이 배가 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아직 15년차 클럽인 우리는 아픈 손가락을 대하는 방식도 차근차근 배워 나가는 중이다. 창단 15년. 그러고 보니 축구장에 유난히 가족 단위의 팬들이 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3년 전 오늘 FA컵 8강전 제주 원정에서 승리했다고, 구글 포토가 알려 줬다. 덕분에 내색은 안했지만 하루종일 느낌이 좋았다. 이 느낌이란게 정말 중요하다. 축구를 오래 보다 보니 온갖 비이성영역에 의존하게 된다. 17경기 동안 승리가 없었고 설레발은 필패이기 때문에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부정탈까봐 말을 아꼈다. 전반은 스탠딩석에서 후반은 S석 맨 앞줄로 이동해서 응원했는데 손잡이가 없는 넓은 공간이라 응원하기 훨씬 자유로웠다. 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만큼 벌레 조롱과 골 셀러브레이션 아이컨택은 덤이다. 화살로 패륜 때려 잡는 남준재의 동점골, 월드컵 스타 문선민의 역전골까지. 사실 마지막 5분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께 기도했고, 경기가 끝나자 한 친구는 문선민을 축구의 신..
늘 설명해야했다. 어떤 계기로 축구장에 다니게 되었는지, 유나이티드를 응원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축구장에 나올 것인지에 대하여. 또래 남자애들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착잡했다. 남들처럼 나도 그냥 축구가 재밌고 응원하는 일이 즐거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할 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지곤 했다. 골대 뒤에서 나란 존재가 일시적이고 의심스럽게 느껴졌다. 선례를 마련하자, 더이상 질문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장들은 나에게 주어진 일종의 의무처럼 여겨졌다. 입으로는 할 수 있어, 인천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할 수 있어, 여자를 되뇌었달까. 언젠가 친구들에게 속내를 털어 놓은 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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